이상재 충신 정려문(李商載 忠臣 旌閭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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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1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이상재 충신 정려문(李商載 忠臣 旌閭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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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향토문화재 제3호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유형문화유적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경기도 오산시 서동 267-2 |
위도 latitude | 37.15089661 |
경도 longitude | 127.0381492 |
지정일자 appnDate | 2020-07-23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국유 |
소유자명 ownerNm | |
규모 scale |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후기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이상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부평이다. 1815년에 건립된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중국의 사신 학사 강왈광(姜曰廣)이 크게 존경하여 시문을 받아갔는데, 이 시가 『황화집(皇華集)』-조선시대 명나라의 사신과 조선의 원접사(遠接使)가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에 실려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1636년(인조 14)에 금정도찰방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規)의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진군하다 용인의 험천(險川:지금의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분전했으나 전사하였다. 사후에 홍문관 교리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에 추증되었다.1815년에 건립된 정려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구조이며 우측 칸 상부에 이상재충신정려문 정판이 있고 그 아래에 송면재(宋冕載 1764~?)가 지은 정려기 현판 1좌가 있다. 내부 좌, 우측면에 각각 백호, 청룡이 그려져 있으며 정문은 홍살문으로 되어있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31-8036-7606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경기도 오산시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1-11 |
ctprvnNm | 경기도 |
sigunguNm | 오산시 |
sido | 31 |
sigungu | 3114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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