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골맥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을](/topic/마을)수호신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제의. 골맥이는 ‘골’과 ‘맥이’의 합성명사로 보인다. 골맥이의 ‘골’은 장음(長音)으로 발음된다. 골맥이는 ‘고을 동(洞)·고을 읍(邑)·고을 군(郡)’ 등의 고을, 즉 인간의 집단 거주처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맥이’는 고을을 수호하는 자, 즉 막아주는 존재이다. ‘막이’에 ‘ㅣ’모음 역행동화현상이 일어나 ‘맥이’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도지방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골맥이’, ‘골매기’, ‘골매기서낭’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골[谷, 곧 마을]’과 ‘액운을 막다, 부락을 수호하다’라는 뜻을 지닌 ‘막다’에서 전성된 명사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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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조정현 |
정의 | 골맥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을](/topic/마을)수호신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제의. 골맥이는 ‘골’과 ‘맥이’의 합성명사로 보인다. 골맥이의 ‘골’은 장음(長音)으로 발음된다. 골맥이는 ‘고을 동(洞)·고을 읍(邑)·고을 군(郡)’ 등의 고을, 즉 인간의 집단 거주처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맥이’는 고을을 수호하는 자, 즉 막아주는 존재이다. ‘막이’에 ‘ㅣ’모음 역행동화현상이 일어나 ‘맥이’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도지방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골맥이’, ‘골매기’, ‘골매기서낭’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골[谷, 곧 마을]’과 ‘액운을 막다, 부락을 수호하다’라는 뜻을 지닌 ‘막다’에서 전성된 명사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 정의 | 골맥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을](/topic/마을)수호신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제의. 골맥이는 ‘골’과 ‘맥이’의 합성명사로 보인다. 골맥이의 ‘골’은 장음(長音)으로 발음된다. 골맥이는 ‘고을 동(洞)·고을 읍(邑)·고을 군(郡)’ 등의 고을, 즉 인간의 집단 거주처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맥이’는 고을을 수호하는 자, 즉 막아주는 존재이다. ‘막이’에 ‘ㅣ’모음 역행동화현상이 일어나 ‘맥이’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도지방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골맥이’, ‘골매기’, ‘골매기서낭’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골[谷, 곧 마을]’과 ‘액운을 막다, 부락을 수호하다’라는 뜻을 지닌 ‘막다’에서 전성된 명사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 상호참조 | 골맥이(84쪽) | 참고문헌 | 釋奠·祈雨·安宅 (調査資料第四十五輯, 朝鮮の鄕土神祀 2, 朝鮮總督府, 1938) 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41) 部落祭 (朝鮮總督府, 1945) 한국무속의 연구 (최길성, 아세아문화사, 1978) 굿의 사회사 (주강현, 웅진, 1992)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당 전7권 (국립민속박물관, 1995~2003)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 상호참조 | 골맥이(84쪽) | 참고문헌 | 釋奠·祈雨·安宅 (調査資料第四十五輯, 朝鮮の鄕土神祀 2, 朝鮮總督府, 1938) 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41) 部落祭 (朝鮮總督府, 1945) 한국무속의 연구 (최길성, 아세아문화사, 1978) 굿의 사회사 (주강현, 웅진, 1992)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당 전7권 (국립민속박물관, 1995~2003)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 내용 | [골맥이](/topic/골맥이)신은 주로 영남지방의 [마을](/topic/마을)에서 흔히 골맥이서낭님, 골맥이할배, 골맥이할매 등으로 불린다. 이때 골맥이신은 마을에 처음 [입주](/topic/입주)·정착한 마을의 [조상신](/topic/조상신)(祖上神)이자 마을의 창건신(創建神)·수호신(守護神)이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골맥이처녀’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토박이 노처녀를 비유해 골맥이신 개념을 희화(戱化)한 말이다. 골맥이는 수호신인 탓에 [동해안별신굿](/topic/동해안별신굿)이나 오구굿의 경우 언제나 동네 어른인 골매기서낭을 모신 뒤에야 굿을 시작한다. 골맥이는 바로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 온 살아 있는 역사신으로서 마을공동체 형성의 정확한 연원을 알려준다.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경상도지방 일대의 여러 별신굿에서는 골매기청좌굿 제차가 있어서 골매기신인 성황지신과 토지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굿거리를 자주 볼 수 있다. 마을공동체의 살아 있는 역사로서 주목할 점으로 당의 형성이 곧바로 촌락의 형성사와 직결된 예를 보여 주는 영남·영동지방의 골맥이굿(골매기굿)을 들 수 있다. 골맥이신은 보통 마을을 최초로 개척한 시조신을 일컬으며, 이 신을 모시는 제차를 골맥이굿이라 한다. 골맥이신은 예컨대 [고래](/topic/고래)로 박씨가 많이 살아온 마을에서는 ‘골맥이 박씨 할매’, 김씨가 먼저 들어온 후 박씨가 들어온 마을에서는 ‘골맥이 김씨 할배 터전에 골맥이 박씨 할배’라고 각각 불리어 [입향시조](/topic/입향시조)에 따라 마을의 창건 유래를 말해 준다. [하회마을](/topic/하회마을)의 예를 들면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동해안 각 마을에서도 ‘김씨 터전에 박씨 골매기’ 등으로 마을의 역사와 신격이 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을에 정착한 순서에 따라 신위가 결정되면서 수호신으로 추앙되는 것이다. 마을신들은 대개 남·여를 함께 모신다. 수탑과암탑, 남근과 여근, 천하대[장군](/topic/장군)과 지하여장군, 남서낭과 여서낭, 용왕과 용궁부인 식으로 남신과 여신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음양 조화는 인격신으로 발전하면서 할아버지신과 할머니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당산할머니와 당산할아버지, 골매기할머니와 골매기할아버지가 그것이다. 골맥이의 기록은 1938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석전·기우·[안택](/topic/안택)](/topic/석전·기우·안택)(釋奠·祈雨·安宅)』의 경남 구포 별신굿에서 “앞당산 골무기, 뒷당산의 골무기”라는 무가 구절과 “골무기는 신목에 깃드는 신의 이름”이라는 간단한 설명이 보인다. 그리고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서는 경남 동래의 골맥이제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 한 건 발견되었지만 정작 기록되어야 할『[부락제](/topic/부락제)(部落祭)』에는 골맥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골맥이제가 체계적으로 조사·보고된 것은 1964년부터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topic/호미)곶면 대[보리](/topic/보리)에서는 3위의 골맥이 하·최·양씨 할배를 음력 시월에 택일해 제사를 지낸다. [제관](/topic/제관)은 많은 성씨 가운데 ‘골맥이집’이라고 불리는 하·최·양씨 후손에서 한 명을 선정한다. 하씨할배는 임진왜란 때(또는 세조 찬위 때) 피란 와서 낙향 1대조가 되었다고 하는 반면에 최씨 측에서는 최씨할배가 먼저 정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치 제주도에서의 고·양·부 3성씨 시조의 순위 다툼을 [연상](/topic/연상)시키기도 한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골맥이서낭님께 제관들이 제사 지내고 나서 동회,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풍물놀이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이곳 골맥이는 이씨 여서낭님이라고 했다. 또한 1967년에 실시한 전국 마을제당 서면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골맥이라는 당 이름이나 제신 이름을 보인 것은 강원도 11건, 경북 398건, 경남 331건 등 모두 740건이었다. 이들 자료를 종합하여 골맥이신의 성격을 정리하면 우선 골맥이신의 분포는 경상도와 강원도 동남지역 일부를 포함한 한정된 지역성을 보이며, 이는 옛 신라 영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번째, 여신이 남신의 2.4배로 아직도 지모신 신앙과 풍요기원의 고형(古型)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되었다. 세 번째로 특정 집단의 시조신·창건신·수호신적 성격을 여기에 아울러서 고려할 만하다. 한편 골맥이제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기록은 1930년대 기록이 가장 오랜 것이고, 그 이전의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골맥이신이 지니는 이상의 세[가지](/topic/가지) 성격 규정에 힘입어 그 역사에 대한 소원적인 고찰을 시도한다면 유사한 현상을 같은 영남지방에서는 멀리 박혁거세 전승이나 김알지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 초기 때 박씨 집단의 시조신, 집단의 창건신, 수호신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씨골맥이라는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신라 왕가의 시조신이라는 [김알지신화](/topic/김알지신화)는 계림의 나뭇가지에 걸린 황금궤에서 시조신으로 탄생함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골맥이신이 깃든다는 골맥이신목과 아울러 이른바 민간의 [조상단지](/topic/조상단지)신앙의 왕권신[화로](/topic/화로)서의 승화(昇華)이자 미화라는 각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자료를 골고루 제공한다. | 내용 | [골맥이](/topic/골맥이)신은 주로 영남지방의 [마을](/topic/마을)에서 흔히 골맥이서낭님, 골맥이할배, 골맥이할매 등으로 불린다. 이때 골맥이신은 마을에 처음 [입주](/topic/입주)·정착한 마을의 [조상신](/topic/조상신)(祖上神)이자 마을의 창건신(創建神)·수호신(守護神)이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골맥이처녀’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토박이 노처녀를 비유해 골맥이신 개념을 희화(戱化)한 말이다. 골맥이는 수호신인 탓에 [동해안별신굿](/topic/동해안별신굿)이나 오구굿의 경우 언제나 동네 어른인 골매기서낭을 모신 뒤에야 굿을 시작한다. 골맥이는 바로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 온 살아 있는 역사신으로서 마을공동체 형성의 정확한 연원을 알려준다.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경상도지방 일대의 여러 별신굿에서는 골매기청좌굿 제차가 있어서 골매기신인 성황지신과 토지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굿거리를 자주 볼 수 있다. 마을공동체의 살아 있는 역사로서 주목할 점으로 당의 형성이 곧바로 촌락의 형성사와 직결된 예를 보여 주는 영남·영동지방의 골맥이굿(골매기굿)을 들 수 있다. 골맥이신은 보통 마을을 최초로 개척한 시조신을 일컬으며, 이 신을 모시는 제차를 골맥이굿이라 한다. 골맥이신은 예컨대 [고래](/topic/고래)로 박씨가 많이 살아온 마을에서는 ‘골맥이 박씨 할매’, 김씨가 먼저 들어온 후 박씨가 들어온 마을에서는 ‘골맥이 김씨 할배 터전에 골맥이 박씨 할배’라고 각각 불리어 [입향시조](/topic/입향시조)에 따라 마을의 창건 유래를 말해 준다. [하회마을](/topic/하회마을)의 예를 들면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동해안 각 마을에서도 ‘김씨 터전에 박씨 골매기’ 등으로 마을의 역사와 신격이 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을에 정착한 순서에 따라 신위가 결정되면서 수호신으로 추앙되는 것이다. 마을신들은 대개 남·여를 함께 모신다. 수탑과암탑, 남근과 여근, 천하대[장군](/topic/장군)과 지하여장군, 남서낭과 여서낭, 용왕과 용궁부인 식으로 남신과 여신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음양 조화는 인격신으로 발전하면서 할아버지신과 할머니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당산할머니와 당산할아버지, 골매기할머니와 골매기할아버지가 그것이다. 골맥이의 기록은 1938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석전·기우·[안택](/topic/안택)](/topic/석전·기우·안택)(釋奠·祈雨·安宅)』의 경남 구포 별신굿에서 “앞당산 골무기, 뒷당산의 골무기”라는 무가 구절과 “골무기는 신목에 깃드는 신의 이름”이라는 간단한 설명이 보인다. 그리고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서는 경남 동래의 골맥이제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 한 건 발견되었지만 정작 기록되어야 할『[부락제](/topic/부락제)(部落祭)』에는 골맥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골맥이제가 체계적으로 조사·보고된 것은 1964년부터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topic/호미)곶면 대[보리](/topic/보리)에서는 3위의 골맥이 하·최·양씨 할배를 음력 시월에 택일해 제사를 지낸다. [제관](/topic/제관)은 많은 성씨 가운데 ‘골맥이집’이라고 불리는 하·최·양씨 후손에서 한 명을 선정한다. 하씨할배는 임진왜란 때(또는 세조 찬위 때) 피란 와서 낙향 1대조가 되었다고 하는 반면에 최씨 측에서는 최씨할배가 먼저 정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치 제주도에서의 고·양·부 3성씨 시조의 순위 다툼을 [연상](/topic/연상)시키기도 한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골맥이서낭님께 제관들이 제사 지내고 나서 동회,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풍물놀이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이곳 골맥이는 이씨 여서낭님이라고 했다. 또한 1967년에 실시한 전국 마을제당 서면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골맥이라는 당 이름이나 제신 이름을 보인 것은 강원도 11건, 경북 398건, 경남 331건 등 모두 740건이었다. 이들 자료를 종합하여 골맥이신의 성격을 정리하면 우선 골맥이신의 분포는 경상도와 강원도 동남지역 일부를 포함한 한정된 지역성을 보이며, 이는 옛 신라 영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번째, 여신이 남신의 2.4배로 아직도 지모신 신앙과 풍요기원의 고형(古型)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되었다. 세 번째로 특정 집단의 시조신·창건신·수호신적 성격을 여기에 아울러서 고려할 만하다. 한편 골맥이제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기록은 1930년대 기록이 가장 오랜 것이고, 그 이전의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골맥이신이 지니는 이상의 세[가지](/topic/가지) 성격 규정에 힘입어 그 역사에 대한 소원적인 고찰을 시도한다면 유사한 현상을 같은 영남지방에서는 멀리 박혁거세 전승이나 김알지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 초기 때 박씨 집단의 시조신, 집단의 창건신, 수호신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씨골맥이라는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신라 왕가의 시조신이라는 [김알지신화](/topic/김알지신화)는 계림의 나뭇가지에 걸린 황금궤에서 시조신으로 탄생함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골맥이신이 깃든다는 골맥이신목과 아울러 이른바 민간의 [조상단지](/topic/조상단지)신앙의 왕권신[화로](/topic/화로)서의 승화(昇華)이자 미화라는 각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자료를 골고루 제공한다. | 지역사례 | 동해안 지역의 [별신굿](/topic/별신굿)에서는 골맥이굿(골매기서낭굿, 골매기청좌굿, 당골매기 서낭굿 등)이 연행된다. 골맥이신은 보통 [마을](/topic/마을)을 최초로 개척한 시조신이라고 하며, 별신굿에서 특히 중요시되는 신이다. 오구굿에서도 먼저 마을신인 골맥이를 모시고 굿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여 반드시 골맥이굿을 한다. 골맥이신은 대체로 부부를 모신다. 반주가 울리는 가운데 무녀가 굿당 밖으로 나가 4m 정도의 장죽간에 [백지](/topic/백지)를 매단 골맥이서낭대를 들고 춤을 춘다. [제관](/topic/제관)의 모친이 자기 [치마](/topic/치마)를 벗어서 서낭대에 매달고 [제상](/topic/제상)에 절을 한다. 그리고 무녀는 골맥이를 모시고 천왕문을 열자는 내용의 무가를 구송한다. 서낭대에서 치마를 떼어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주고 서낭대를 쥐고 신을 내려 떨면서 굿당 안의 제단을 둘러본 다음 굿당 앞 천막에 기대어 세워 둔다. 이 서낭대는 골맥이신의 상징이며, 이것을 굿당에 세움으로써 굿당이 신성한 곳이라는 표시가 된다. 이 제차는 굿당에서 맨 처음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관중에게 굿의 인상을 심는 점에서 중요해 대체로 주무녀가 맡아 연행한다. 골맥이굿은 동해안 굿 전체에서 중요한 제차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망자를 천도하는 오구굿을 할 때에도 반드시 골맥이굿을 한다. 굿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네 어른인 골맥이서낭님을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개 다도해 등지에서 많이 나타나는 입도조(入島祖) 설화는 귀양을 왔다가 눌러앉은 경우, 먹고살기 위해 [이사](/topic/이사)를 온 경우, 본격적으로 어업을 하기 위하여 들어온 경우, 난리통(특히 임진·병자 양 난)에 난을 피해 들어온 경우, 역적으로 몰려 도망을 온 경우, 나라의 큰 변고를 피하여 숨어들어온 경우 등 다양한 입도 경로를 밝혀 준다. 후손들이 족보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입도 조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는 당의 분화를 잘 따져보고 인근 섬들이 개척된 역사를 알아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입도조의 당이 같은 섬 안에서도 여러 마을을 따라 산중, 산 앞, 동네, 동구, 들, 갯가 등지에 형성·분당(分堂)되어 변천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또는 인근의 작은 섬을 따라가면서 할머니당, 할아버지당, 아들당, 며느리당 등의 순서로 분화되어 있는 경우에서 이들 신격이 마을형성사와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여자가 시집갈 때 반드시 자기가 살던 마을 당의 돌을 [가지](/topic/가지)고 가서 시집간 동네에 새로운 당을 퍼뜨리는 신당 [가지치기](/topic/가지치기)가 살아 있다. 이는 바로 굿과 공동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 지역사례 | 동해안 지역의 [별신굿](/topic/별신굿)에서는 골맥이굿(골매기서낭굿, 골매기청좌굿, 당골매기 서낭굿 등)이 연행된다. 골맥이신은 보통 [마을](/topic/마을)을 최초로 개척한 시조신이라고 하며, 별신굿에서 특히 중요시되는 신이다. 오구굿에서도 먼저 마을신인 골맥이를 모시고 굿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여 반드시 골맥이굿을 한다. 골맥이신은 대체로 부부를 모신다. 반주가 울리는 가운데 무녀가 굿당 밖으로 나가 4m 정도의 장죽간에 [백지](/topic/백지)를 매단 골맥이서낭대를 들고 춤을 춘다. [제관](/topic/제관)의 모친이 자기 [치마](/topic/치마)를 벗어서 서낭대에 매달고 [제상](/topic/제상)에 절을 한다. 그리고 무녀는 골맥이를 모시고 천왕문을 열자는 내용의 무가를 구송한다. 서낭대에서 치마를 떼어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주고 서낭대를 쥐고 신을 내려 떨면서 굿당 안의 제단을 둘러본 다음 굿당 앞 천막에 기대어 세워 둔다. 이 서낭대는 골맥이신의 상징이며, 이것을 굿당에 세움으로써 굿당이 신성한 곳이라는 표시가 된다. 이 제차는 굿당에서 맨 처음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관중에게 굿의 인상을 심는 점에서 중요해 대체로 주무녀가 맡아 연행한다. 골맥이굿은 동해안 굿 전체에서 중요한 제차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망자를 천도하는 오구굿을 할 때에도 반드시 골맥이굿을 한다. 굿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네 어른인 골맥이서낭님을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개 다도해 등지에서 많이 나타나는 입도조(入島祖) 설화는 귀양을 왔다가 눌러앉은 경우, 먹고살기 위해 [이사](/topic/이사)를 온 경우, 본격적으로 어업을 하기 위하여 들어온 경우, 난리통(특히 임진·병자 양 난)에 난을 피해 들어온 경우, 역적으로 몰려 도망을 온 경우, 나라의 큰 변고를 피하여 숨어들어온 경우 등 다양한 입도 경로를 밝혀 준다. 후손들이 족보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입도 조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는 당의 분화를 잘 따져보고 인근 섬들이 개척된 역사를 알아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입도조의 당이 같은 섬 안에서도 여러 마을을 따라 산중, 산 앞, 동네, 동구, 들, 갯가 등지에 형성·분당(分堂)되어 변천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또는 인근의 작은 섬을 따라가면서 할머니당, 할아버지당, 아들당, 며느리당 등의 순서로 분화되어 있는 경우에서 이들 신격이 마을형성사와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여자가 시집갈 때 반드시 자기가 살던 마을 당의 돌을 [가지](/topic/가지)고 가서 시집간 동네에 새로운 당을 퍼뜨리는 신당 [가지치기](/topic/가지치기)가 살아 있다. 이는 바로 굿과 공동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 의의 | 골맥이제는 여신 관념이 우위에 서는 지모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신라 시조신화보다도 더 고형성을 보존하고 있는 유구한 농경민족의 촌락 집단들이 평화와 풍요를 기원해 온 민간신앙의 오랜 전통이다.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측면에서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는 정월에 많고 그 가운데에서도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는데 영남지방 마을제의 한 형태인 골맥이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 의의 | 골맥이제는 여신 관념이 우위에 서는 지모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신라 시조신화보다도 더 고형성을 보존하고 있는 유구한 농경민족의 촌락 집단들이 평화와 풍요를 기원해 온 민간신앙의 오랜 전통이다.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측면에서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는 정월에 많고 그 가운데에서도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는데 영남지방 마을제의 한 형태인 골맥이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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