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에 위치한 돌무지 무덤 형태의 [마을](/topic/마을)신앙 유적지. 1997년 12월 31일에‘경상남도 민속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아[기장](/topic/기장)수](/topic/아기장수) 설화와 관련하여 마을 뒤의 깃대봉에서 용마가 날아와 죽었고, 그 말의 무덤이 이 돌무지이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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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천진기 |
정의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에 위치한 돌무지 무덤 형태의 [마을](/topic/마을)신앙 유적지. 1997년 12월 31일에‘경상남도 민속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아[기장](/topic/기장)수](/topic/아기장수) 설화와 관련하여 마을 뒤의 깃대봉에서 용마가 날아와 죽었고, 그 말의 무덤이 이 돌무지이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 정의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에 위치한 돌무지 무덤 형태의 [마을](/topic/마을)신앙 유적지. 1997년 12월 31일에‘경상남도 민속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아[기장](/topic/기장)수](/topic/아기장수) 설화와 관련하여 마을 뒤의 깃대봉에서 용마가 날아와 죽었고, 그 말의 무덤이 이 돌무지이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 내용 | 거기리는 옛날 [마을](/topic/마을) 주변에 돌이 많아서 ‘돌밭’이라고 했고, 개울이 마을을 끼고 흐른다 하여 ‘걸터’라하였다. ‘걸’은 도랑의 옛말이면서 이곳의 사투리이다. 1914년에 한자로 ‘도랑 터’라는 뜻의 ‘거기(渠基)’라고 표기하였다. 이 마을은 성주 여씨가 이룬 마을이라 하며, 마을 사람 대부분은 논농사와 [사과](/topic/사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걸터의 마을신앙은 성주 여씨 집안의 [아[기장](/topic/기장)수](/topic/아기장수) 설화에 나오는 용마와 관련된다. 1500년쯤에 이 마을에서 사는 여씨 집에 비범한 아이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평범한 집안에 비범한 아이가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고 하여 모두 죽였다. 이 아이의 부모도 역적이 될까 두려워서 아이를 죽였다. 그러자 마을 뒤 깃대봉에서 용마(龍馬)가 날아와 죽었다. 아이가 죽자 음골의 넓은 바위가 갈라지면서 용마가 나왔다. 이 용마는 그 바위에서 한 발자국 딛고 뛰더니, 마을 중간에서 두 번째 발을 내딛고, 세 번째는 지금의 [말무덤](/topic/말무덤)이 있는 곳에 와서 죽었다. 천둥번개를 치면서 용마가 나온 곳은 음골의 넓은 바위이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급경사[지게](/topic/지게) 놓여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말바위](/topic/말바위)’, ‘말발굽 내리[방석](/topic/방석)’ 등으로 지칭한다. 이 큰 바위 아래에는 첫 번째 말 발자국 모양의 흔적이 있다. 물론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첫 번째 말 발자국이라고 믿고 있다. 그 아래 계곡 양쪽에 작은 자연동굴 형태의 당산과 삼각형 형태로 이루어진 천지바위가 있다. 여기서 윗당제를 지낸다. 말이 두 번째 내디딘 자리 라는 바위는 개인 소유의 농지 가운데 있었다가 농지 주인이 없애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 장소에는 자갈돌을 쌓아 말무덤을 만들었다. 돌밭이어서 걸터라고 한 지명 유래처럼 냇가의 자갈돌이 많다. 말무덤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들이 ‘조산껄’, ‘조산달’ 등으로 부르며 냇가의 자갈돌을 쌓아 올렸다. 말무덤은 높이 4.6m, 아래둘레 23.4m의 완만한 원추형이다. 그 정상에는 세로로 긴 돌 4개를 세워 놓았다. 주위에는 오래되고 큰 노송이 서 있다. 마을 당산제의 장소 세 곳은 모두 용마가 나타나고, 발자국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죽은 장소이다. 당산제는 용마가 나온 음골의 넓은 바위 밑 윗당산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디딘 바위에 술잔을 붓고, 세 번째 죽은 자리인 말무덤에서 마[무리](/topic/무리)한다. [제관](/topic/제관)은 정월 초이렛날에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되고 나면 당산과 제관 집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놓는다. 제물은 제관과 유사가 거창읍 시장에 가서 장만하며, 제기는 당산제 전용으로 준비된 것을 사용한다. 정월 열나흗날 초저녁에 풍물을 앞세워 지게에 제물인 돼지를 지고 음골 윗당산이 있는 곳을 거치면서 이때 돼지를 올린다. 다시 돼지를 지고 내려와서 잡는다. 앞다리와 위턱은 자연동굴 형태의 윗당산, 뒷다리는 당산 건너편의 천지 바위에 각각 올린다. 아래턱은 마을 앞의 말무덤에 올린다. 제의가 끝나면 돼지 아래턱은 말무덤에 마련된 돌구[멍에](/topic/멍에) 넣어 둔다. 두 번째 용마가 디딘 바위에는 별도의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잔만 올렸으나 바위가 없어지면서 이것마저도 올리지 않게 되었다. 마을에서 몇 해 동안 당산제를 지내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마을의 소들이 계속 죽게 되자 다시 당산제를 올렸더니 재액이 사라졌다. 현재는 마을 이장, [구장](/topic/구장), 새마을지도자 등 마을 일을 보는 사람들만 제의에 참여하여 정월 열나흗날 낮에 윗당산과 말무덤에서만 제사를 지낸다. | 참고문헌 | 거창역사 (거창군, 1994거창의 전설) 거창군의 [마을](/topic/마을)신앙 (거창문화원, 2003) 박종섭 (학사원, 1989, 영남의 구전자료집 5) 조희웅 외 (도서출판 박이정, 2005,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topic/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말 민속론) | 내용 | 거기리는 옛날 [마을](/topic/마을) 주변에 돌이 많아서 ‘돌밭’이라고 했고, 개울이 마을을 끼고 흐른다 하여 ‘걸터’라하였다. ‘걸’은 도랑의 옛말이면서 이곳의 사투리이다. 1914년에 한자로 ‘도랑 터’라는 뜻의 ‘거기(渠基)’라고 표기하였다. 이 마을은 성주 여씨가 이룬 마을이라 하며, 마을 사람 대부분은 논농사와 [사과](/topic/사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걸터의 마을신앙은 성주 여씨 집안의 [아[기장](/topic/기장)수](/topic/아기장수) 설화에 나오는 용마와 관련된다. 1500년쯤에 이 마을에서 사는 여씨 집에 비범한 아이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평범한 집안에 비범한 아이가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고 하여 모두 죽였다. 이 아이의 부모도 역적이 될까 두려워서 아이를 죽였다. 그러자 마을 뒤 깃대봉에서 용마(龍馬)가 날아와 죽었다. 아이가 죽자 음골의 넓은 바위가 갈라지면서 용마가 나왔다. 이 용마는 그 바위에서 한 발자국 딛고 뛰더니, 마을 중간에서 두 번째 발을 내딛고, 세 번째는 지금의 [말무덤](/topic/말무덤)이 있는 곳에 와서 죽었다. 천둥번개를 치면서 용마가 나온 곳은 음골의 넓은 바위이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급경사[지게](/topic/지게) 놓여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말바위](/topic/말바위)’, ‘말발굽 내리[방석](/topic/방석)’ 등으로 지칭한다. 이 큰 바위 아래에는 첫 번째 말 발자국 모양의 흔적이 있다. 물론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첫 번째 말 발자국이라고 믿고 있다. 그 아래 계곡 양쪽에 작은 자연동굴 형태의 당산과 삼각형 형태로 이루어진 천지바위가 있다. 여기서 윗당제를 지낸다. 말이 두 번째 내디딘 자리 라는 바위는 개인 소유의 농지 가운데 있었다가 농지 주인이 없애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 장소에는 자갈돌을 쌓아 말무덤을 만들었다. 돌밭이어서 걸터라고 한 지명 유래처럼 냇가의 자갈돌이 많다. 말무덤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들이 ‘조산껄’, ‘조산달’ 등으로 부르며 냇가의 자갈돌을 쌓아 올렸다. 말무덤은 높이 4.6m, 아래둘레 23.4m의 완만한 원추형이다. 그 정상에는 세로로 긴 돌 4개를 세워 놓았다. 주위에는 오래되고 큰 노송이 서 있다. 마을 당산제의 장소 세 곳은 모두 용마가 나타나고, 발자국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죽은 장소이다. 당산제는 용마가 나온 음골의 넓은 바위 밑 윗당산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디딘 바위에 술잔을 붓고, 세 번째 죽은 자리인 말무덤에서 마[무리](/topic/무리)한다. [제관](/topic/제관)은 정월 초이렛날에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되고 나면 당산과 제관 집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놓는다. 제물은 제관과 유사가 거창읍 시장에 가서 장만하며, 제기는 당산제 전용으로 준비된 것을 사용한다. 정월 열나흗날 초저녁에 풍물을 앞세워 지게에 제물인 돼지를 지고 음골 윗당산이 있는 곳을 거치면서 이때 돼지를 올린다. 다시 돼지를 지고 내려와서 잡는다. 앞다리와 위턱은 자연동굴 형태의 윗당산, 뒷다리는 당산 건너편의 천지 바위에 각각 올린다. 아래턱은 마을 앞의 말무덤에 올린다. 제의가 끝나면 돼지 아래턱은 말무덤에 마련된 돌구[멍에](/topic/멍에) 넣어 둔다. 두 번째 용마가 디딘 바위에는 별도의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잔만 올렸으나 바위가 없어지면서 이것마저도 올리지 않게 되었다. 마을에서 몇 해 동안 당산제를 지내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마을의 소들이 계속 죽게 되자 다시 당산제를 올렸더니 재액이 사라졌다. 현재는 마을 이장, [구장](/topic/구장), 새마을지도자 등 마을 일을 보는 사람들만 제의에 참여하여 정월 열나흗날 낮에 윗당산과 말무덤에서만 제사를 지낸다. | 참고문헌 | 거창역사 (거창군, 1994거창의 전설) 거창군의 [마을](/topic/마을)신앙 (거창문화원, 2003) 박종섭 (학사원, 1989, 영남의 구전자료집 5) 조희웅 외 (도서출판 박이정, 2005,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topic/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말 민속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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